제5구간 갈령에서 신의터재까지
제5구간 갈령에서 신의터재까지
o 산행일시: 2012.4.16(월) 05:45~16:20(10시간35분-휴식등약1시간
=실제산행9시간35분)
- 장시간 휴식, 점심식사 등 1시간 포함
산불감시초소(580m)~화령재(320m)~윤지미산(538m)~무지개산(441m)
입구~신의터재(280m)
o 산행거리: 24.5km (평균속도 :2.7km/h, 최대속도13.1km/h)
o 산행인원: 나홀로
o 준 비 물: 물3병(대1,소2), 인절미, 귤3개, 오이 약간, 초코렛과
자유시간 역간, 컵라면 1개, 커피등
o 산행지까지의 교통: 승용차(경부고속도로~청원상주간 고속도로~화서인터체인지
에서 OUT)
-신의터재에서 갈령 차량회수: 화령택시 25,000원(화동택시(010-3522-2838)
o 시간대별 코스
- 05:45갈령 출발
- 06:10 갈령삼거리(5분간 휴식)
- 06:42 구병산 갈림길(못제)
- 06:48옛헬기장 공터
- 06:53못제 설명판 설치 안부
- 06:59 억시기 갈림길 이종목
- 07:23 조망바위(5분간 휴식)
- 07:52 비재(철계단)(5분간 휴식)
- 09:45 봉황산(740.8m) 정상(10분간 휴식)
- 10:31580봉(산불감시초소)
- 11:27 화령재
- 11:36화령정(7분간 휴식)
- 11:56 신의터재 이정목(11.1km) 처음 등장(콘크리트 도로 시작점)
- 12:00~12:15 점심식사 15분간(라면과 인절미,귤,커피 등)
- 12:31 윤지미산 1.2km 이정표
- 13:05 윤지미산(538m) 정상(5분간 휴식)/신의터재 9km 이정목
- 14:32 탁터블루베리 갈림길/신의터재 5.2km이정목(3분간 휴식)
- 14:49 무지개산(441m) 갈림길/신의터재 4.5km 지점
- 15:20 신의터재 방향이 90도 꺾기는 지점(신의터재3.1km)(5분간 휴식)
- 16:05마지막 삼각점봉(5분간 휴식)
- 16:20신의터재(280m)
o 산행지 개요
= 비재 : 비재는 나는 새의 형국이라 하여 비조(飛鳥)재, 비조령이라 불렀으나 최근에 와서 비재라이름이 굳어졌다.
=못제 : 백두대간 마루금에 유일한 못이 존재했다는 못제는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과 보은군의 호족인 황충장군과의 세력다툼에 얼킨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 봉황산
: 백두대간이 빚어올린 봉황산은 봉황이 살았다는 유래에서 이름 붙여진 산으로서 봉황은 죽실(竹實)을 먹고 오동나무에서 잠을 잔다는 전설적인 새이다. 1300여년전 봉황새가 이 산에 날아들어 30년 정도 살다가 먹을 것이 없어 떠난 이후부터 봉황산이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하고, 또한 정상이 봉황머리를 빼어 올리고 양 날개를 펼친 봉황과 같다하여 봉황산이라고 불린다고도 한다. 또 봉황산은 중종의 태를 묻었다는 전설에 힘입어 인근 마을에서는 태봉산(胎封山)이라고도 부르며, 송천을 발원시키는 화령의 진산(鎭山)이다. 봉황산에 서면 멀리 속리산 천황봉과 주변의 주병산, 백화산, 두리봉, 형제봉과 화서마을이 한눈에 바라뵈는 곳으로 전망이 아주 좋다.
=화령재 : 조선시대 때 상주시 화남면 소재지가 화령현이었는데, 이 화령현을 넘나들던 고개라 하여 화령재라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고갯마루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화북소재지 쪽으로 조금 가면 상곡1리 마을표석과 도로이정표가 서있다.화령재 표지석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화서(化西)연혁, 이 고개는 소백산맥의 줄기를 타고 북으로 조령,남으로 추풍령과 연하여 화령(火嶺)으로 불리어 왔다고 택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화령(化寧)은 본래 신라때는 건비군(建匕郡)이었으나 경덕왕 때 화령군(化寧郡)으로 고쳤고,고려때는 현으로 되었다가 근대에 와서 화서면(化西面)으로 되었다. 옛부터 화령시장(化寧市場)은 상주장, 관기장과 함께 널리알려져 있으며, 6.25 때는 국군이 인민군 15사단을 섬멸한 전승지로 이름있는 곳이며, 남으로 황간,북으로는 화북 문장대에 이르는 지방도가 있고, 상주 보은간 국도가 동서로 관통하여 교통의 요충지이다. 서기 1987년 8월 건립」
=화령정 : 화령재의 화령정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는 건립기가 있다.「화령정 건립기, 옛 상주를기록한 상산지(商山誌)에 본주(本州)의 산(山)은 상령(商嶺), 물은 낙강(洛江)이라 했다. 백두에서 태백을 거쳐 소백에 이르는 큰 줄기의 맥은 상산을 에워싸고 있는데, 문장대와 이곳 봉황산은 험준하지만 수려한 기암으로 구름위에 높이 솟아 정기로 뭉친 영산(靈山)이며 ,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상주의 서편은 곧 화령이고 령의 서편은 충청도 보은이며, 화령은 소제 노수신(蘇齊 盧守愼)의 향리이다(택리지). 달천(達川)의 운계서원(雲溪書院)과 미산(微山)의 봉무서당(鳳舞書堂)이 있어 글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이처럼 화령은 문향(文鄕)으로 산수가 기절(奇絶)한 곳이 많은 산간의 정풍(情風)어린 곳이다. 신라시대 초기에 건비군(建匕郡)이 영달비현(笭達匕縣)으로, 그 후 경덕왕 때 화령군(化寧郡)으로 개명해 고려까지 이어오다 조선조 태종 13년 화령현(化寧縣)으로서 상주목에 속했고, 고종 32년(1896) 상주군 화서면(化西面)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서남북의 십자대로가 트여 중화지역(中化地域)의 행정·경제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충이고 산악이 천연요새로서 사산(沙山)과 국사당(國師堂) 봉수를 중심으로 국사봉(國師峰)과 율림(栗林)의 노고산성(老姑山城),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백제 군사를 물리친 백화산(白華山)의 금돌성(今突城), 견훤의 야망을 키운 장암(壯岩)과 하송(下松)의 견훤성(甄萱城 : 城山山城)은 신라·백제·고구려의 접전지였다.임진왜란을 당하여는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북상하는 왜군을 용화전투(龍華戰鬪)에서 물리치고 청계사(淸溪寺)는 창의군의 항쟁의 근거지였다.
또한 6.25동란 때는 괴뢰군 15사단 병력 1천명을 사살한 반공전선의 유적인 화령장지구
(化寧場地區) 전적기념비가 있는등 옛부터 국방의 요충지였다. 여기 소백산맥 준령을 넘나들며 상주를 방문하거나 이곳을 지나는 길손에게 상령(商嶺) 또는 화령(火嶺)이란 이름을 지닌 화령재 산마루에 옛 빛이 찬란한 연륜을 자랑하고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고저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1990년 6월, 상주군수」
=윤지미산 : 속리산 자락의 윤지미산은 소머리산으로 불렸는데 윤지미의 뜻은 대학에 나오는 (윤집결중:세상을 포용한다)에서 유래하여 윤집산이라 하다가 윤지미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o 산행일기
오늘은 워낙 날씨가 좋은 날인데다가 중국어 학원도 휴무일이라
백두대간길을 나서기로 하고 전날 저녁에 미리 꾸려놓은 배낭을 챙겨
새벽 2시반에 기상하여 간단한 식사후 경북상주를 향하여 집을 나선다.
경부고속도로를경유,
청원에서 상주간 고속도로로 접어드는 것은 재4구간 진행시와 동일,,,,
화서휴게소에 잠시 들러 화장실을 들런 것 외에서
곧장 오늘의 출발장소인 갈령으로 향한다.
갈령은 49번 국지도가 지나는 도로로서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에서 화북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갈령에 도착하니 새벽 5시 30여분
"葛嶺"이라고 표시한 커다란 표지석이 나를 반긴다.
배낭과 등산화의 매무새 등을다시 조이고는
차량과 이별하여 갈령삼거리를 향하여 출발,,,
입산금지라는 플랜카드에는 과태료 10만원이라는글귀가 보이나
잠간 실례하고 곧장 갈령삼거리를 향하여 가파른 오름을 올라선다.
약간의 암릉으로서 썩 좋지않은 등산로가 계속 이어지고,,,,
갈령에서 갈령삼거리까지의 어프로치 거리만도 1.3km 정도,,,,
가파른 오름이라 시간도 꽤 많이 소요되는 것 같다.
갈령삼거리에서 비재를 거쳐 봉황산까지는 암릉구간이 다소 많은구간이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80봉 이후에는 다소의 육산형태의 구간으로,,
가파른 급경사의 윤지미산을 올랐다가 내려선
이후의 9km는 아주 지루함의 연속~~~
봉황산의 가파른 급경사 오름과
윤지미산의 가파른 급경사는
오늘의 산행에서 가장 힘들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곳,,,,,
윤지미산을 끝으로 무지개산 입구까지와 그 이후의 산행은 아주 평범한
200~400고지가 연속 이어지는 지루함이 계속되는 조용한 산행길,,,,
평일 백두대간 산행중에 사람과의 만남이 드물지만,
오늘 산행중에도 두번의 조우 기회가 있었다.
첫번째로 만난분은 580봉 산불감시초소에 근무중인 노인네 한분,,,
아랫 동네에서 올라오셔서 근무중이라는 말씀,,
두번째 조우는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화령재로 향하던중 한무리의 산객(6명)과의 조우,,,,,
속리산에서 추풍령까지의 중화지구대라 일컫는 산행구간을
오늘 마무리하는 시간,,,
그야말로 오늘의 산행은 무심으로 뚜벅뚜벅
아무 생각없이 하루종일 걸으면 되는 곳
못제를 지날즈음에 충북알프스를 알리는 푯말,,,,
구병산과 속리산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충북알프스라 일컫는 것으로
못제에서 구병산으로 향하는 구간이 충북알프스와 연결됨을 알리고 있다.
그곳을 지나 좌측으로는 "억시기 마을"과 연결됨을 알리는 이정목,,,,,,
오늘의 산행구간에서 특히할 만한 것은
봉황산 정상과 갈령삼거리의 둥근 의자 쉼터가 같은 모양새를하고 있다는 것과
마루금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서면 재를 넘고
다시 오름을 올라서면 다시 재로 이어지지만
이들 재들이 충북과 경북의 道界의 경계가 아니라는 점.
경북 상주시의 면과 면을 경계하는 面界가 대부분이라는 점.
마루금 양쪽 마을의 개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까지
모두 들리는 마을 뒷산 정도의 연속되는
산보나 산책로 같은 마루금이라는 것,,,,
화령재로 내려서면 여러 갈래의 도로에서 약간 마루금을 놓칠 수 있는 곳,,,
북진을 하시는 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지만
남진을 하는 분들은 화령재에서 좌우 도로는 무시하고
무조건 도로를 건너 직진하여 진행,,,,
직진도로를 따라 걷다가 보면
좌측으로 약간의 표시기가 달린 곳을 따라 진행하면
화령정이 설치되어 있는 화령재에 금방 도착,,,,
약간의 휴식을 끝내고 도로를 횡단하여 오름을 올라서니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달리는 터널위를 지난다.
자세히 보니 화서 인터체인치 부근
이곳에서 10여분쯤 진행하면 콘크리트 포장길과 조우,,
12시가 넘어가는 시간즈음
콘크리트 포장길의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준비해 간 컵라면과 인절미로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는 귤과 커피한잔으로 후식까지 마친다.
이곳에서 부터의 모든 이정목의 표시는 신의터재까지의 거리를 알리고 있으며,
대간 마루금은 청원상주간 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다가
무지개산 갈림길에서 우측으로꺾이면서
고속도로와는 이별하여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오늘 산행은 나홀로 하였기 망정이지 집사람과 같이 왔더라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라,,,,,,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신의터재에 도착,,
지루함을 달래주었던 봄꽃들과 같이한 산행을 마무리하고는
화서 개인택시 사장님께서 일러준대로 갈령에서 차량을 회수한 후
화서인터체인지로 되돌아 오지 않고 곧장 갈령을 넘어
화북을 경유하여 충북 증평으로 달려 증평인터체인에서 중부고속도로 접속한후
평택간 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오니 많은 시간이 절약되면서
오늘의 산행 역시 멋지게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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